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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VR 기기를 쓰고 한참을 서성거리게 된 이유

어쩌다 보니 집에 VR 기기가 하나 생겼다. 처음엔 신기해서 이것저것 설치해 보느라 며칠을 보냈는데, 사실 이게 막상 쓰려니 생각보다 손이 잘 안 간다. 기기를 머리에 쓰고 있으면 세상이랑 단절되는 그 기분이 묘하다. 얼마 전에 비던이라는 버추얼 아이돌 그룹의 ‘유월의 날씨’라는 곡을 VR로 구현한 영상을 봤다. 멤버들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걸 가상 공간에서 본다는 게 예전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막상 눈앞에서 캐릭터가 춤추고 있으니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이 들더라. 그런데 10분 정도 지나니까 코 부분이 간지럽고, 무엇보다 계속 서서 봐야 한다는 점이 묘하게 피곤하게 다가왔다.

3D로 보는 집 구조와 현실 사이의 괴리

최근엔 부동산 앱에서도 VR 매물 투어가 꽤 잘 되어 있다. 이사를 고민할 때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귀찮아서 휴대폰으로 3D 투어를 해봤는데, 확실히 편하긴 하다. 굳이 부동산까지 가지 않아도 대략적인 구조는 다 보이니까. 근데 이게 맹점이 있다. 화면상으로는 평수가 꽤 넓어 보이는데, 막상 현장에 가서 보면 이상하게 좁아 보이는 거다. 사진과 3D 기술이 사람의 심리를 얼마나 교묘하게 파고드는지 새삼 느꼈다. 4억 원대 매물을 몇 번 클릭하다가 결국 직접 가봤는데, 역시 공간감은 렌즈로 보는 것과 발로 딛는 것의 차이가 컸다. 기술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집의 눅눅한 냄새나 골목길의 바람까지 구현해주지는 않으니까.

체험관에서 느낀 묘한 몰입감과 어지러움

주말에 부산 쪽에 놀러 갔다가 조선통신사 가상 전시관이라는 곳을 우연히 들렀다. 입장료는 대략 5천 원 정도였나,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은 가격이었다. VR 기기를 쓰고 통신사 행렬을 체험하는 거였는데, 고개를 돌릴 때마다 화면이 따라오는 그 속도감이 좀 어지러웠다. 옆에 있던 초등학생들은 신기하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멀미가 나서 중간에 기기를 살짝 들어 올렸다. 생생한 건 좋은데, 이게 진짜 역사를 공부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시각적인 자극을 즐기는 건지 구분이 안 가더라. 확실히 눈앞에서 조선시대 배가 지나가는 걸 보면 압도되긴 하는데, 끝나고 나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딱히 뚜렷하지 않다는 게 함정이다.

군대 체험과 디지털의 접점 사이에서

계룡시 쪽 밀리터리 체험 프로그램 기사를 본 적이 있다. VR로 전투 환경을 체험한다는 건데, 요즘 학생들은 이런 걸로 군대를 미리 경험한다고 한다. 사실 이게 안전 교육이나 실감형 콘텐츠로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겠지만, 내가 예전에 다녀온 실제 군 생활을 생각해보면 좀 묘한 기분이 든다. 땀 흘리고 흙먼지 뒤집어쓰면서 겪었던 그 불쾌한 감각들을 가상현실이 다 담아낼 수 있을까? 기술이 산업 안전 교육이나 화재 대피 훈련처럼 꼭 필요한 곳에 쓰이는 건 분명 좋아 보인다.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고통이나 현장감은 그렇게 쉽게 데이터화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남는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들

가끔은 이런 실감형 콘텐츠들이 왜 자꾸 내 삶에 들어오려는지 모르겠다. 편의를 위해서라면 찬성이지만, 가끔은 너무 많은 정보를 기술로 채워 넣으려는 느낌을 받는다. 가상현실이라는 게 결국 우리가 직접 겪어야 할 수고를 줄여주는 도구일까, 아니면 우리가 겪어야 할 진짜 경험을 뺏어가는 벽일까. 얼마 전에 본 논란 많은 대체 역사 콘텐츠도 그렇다. 가상현실이나 대체 역사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자극적인 설정을 내세우는 건지 보는 사람이 판단해야 할 몫이 너무 커졌다.

오늘도 퇴근하고 돌아와서 기기를 충전기에 꽂아두었다. 내일은 아마 또 쓰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생각나서 짧게 무언가를 볼 것 같기도 하다. 이 기기를 사고 나서 삶이 어떻게 바뀌었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냥 가끔 궁금할 때 꺼내 보는 장난감 같기도 하고, 아니면 언젠가 정말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는 도구 같기도 하다. 딱히 결론은 없다. 그냥 오늘도 이런저런 기술들을 경험하면서 피로감과 신기함 사이를 오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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