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갑자기 가게 된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지난 주말에 조카들을 데리고 바람이나 쐴 겸 대구 근교로 나갔다가 경북 칠곡군 석적읍 강변대로에 있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 다녀왔다. 그냥 낙동강 변을 따라 드라이브나 하려고 나선 길이었는데, 표지판이 크게 보이길래 홀린 듯이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으로 3,000원이었는데, 요즘 웬만한 사설 박물관이나 체험관 입장료를 생각하면 꽤 저렴한 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조카들은 입구에 전시된 탱크며 비행기를 보고 벌써 흥분해서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오랜만에 걷는 거라 벌써 발목이 묵직해지는 걸 느꼈다. 평소에 걷는 걸 워낙 싫어하다 보니 이런 넓은 기념관에 오면 초반부터 기운이 빠지곤 한다.
기대했던 VR 전차 탑승 체험의 대기 시간
기념관 내부로 들어가니 전투체험관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 게 보였다.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실제로 전차를 타고 전투를 벌이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조카 녀석들이 그걸 보더니 무조건 타야 한다며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대기 줄을 보니 그리 길어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줄 뒤에 서고 나니 줄이 정말 안 빠졌다. 대기 시간만 거의 40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한 팀이 타고 내릴 때마다 직원이 장비를 소독하고 조정하는 시간이 꽤 걸려서 그런지 체감 대기 시간은 훨씬 길었다. 40분을 꼿꼿이 서서 기다린 끝에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었는데, 실제 탑승 시간은 고작 3분 남짓이라는 안내를 듣고 나니 맥이 탁 풀렸다.
생각보다 어지럽고 화질이 낮았던 가상현실 기기
차례가 되어 헤드셋을 쓰는데, 앞사람들이 쓰면서 흘린 땀 때문인지 가죽 패드 부분이 묘하게 눅눅했다. 일회용 안대를 주긴 했지만 얼굴에 닿는 느낌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직원이 머리 크기에 맞춰 끈을 조여주는데 너무 꽉 조였는지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화면이 켜지고 전차가 움직이는 시뮬레이션이 시작되었는데, 생각보다 화면 화질이 선명하지 않고 살짝 뿌연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내 머리가 움직이는 속도와 화면이 따라오는 속도 사이에 미세한 시간차가 있어서 그런지, 시작한 지 1분도 안 되어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실감 나게 전투를 체험하라는 의도였겠지만, 나한테는 그저 멀미를 유발하는 기계에 불과했다.
예전 오락실 시뮬레이터와 비교했을 때의 아쉬움
이런 가상현실 체험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예전 어릴 적 오락실에서 타던 대형 화면의 체감형 시뮬레이터 기기들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화면이 눈앞에 바로 붙어 있다는 점만 다를 뿐, 움직임의 둔탁함이나 조작의 한계는 비슷하게 느껴진다. 요즘 유행하는 도심형 VR 테마파크에 가면 한 번 타는 데 만 원이 훌쩍 넘는 요금을 받는데, 그런 곳의 최신 장비들과 비교하면 기념관의 기기는 조금 구형 같다는 인상도 지우기 어려웠다. 화면 속 그래픽도 마치 2000년대 초반 PC 게임을 보는 듯한 어설픈 3D 텍스처로 채워져 있어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꽤 많았다. 조카들은 마냥 신기해하며 좋아했지만, 내 기준에서는 가상현실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비해 콘텐츠의 정교함이 아쉬웠다.
실감형 콘텐츠라는 단어와 실제 체감의 괴리감
뉴스나 인터넷 기사를 보면 가상현실이나 실감형 콘텐츠라는 단어가 매일같이 등장하고, 금방이라도 세상이 바뀔 것처럼 떠들어댄다. 하지만 이렇게 실제 생활 속에서 접하는 장비들은 여전히 무겁고, 어지럽고, 화질이 아쉽다. 안경을 쓴 사람들은 헤드셋을 겹쳐 쓰느라 안경테가 짓눌려 아프기도 하고, 렌즈 초점을 맞추느라 한참을 버벅대야 한다. 이런 물리적인 불편함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훌륭한 가상 세계를 만들어놓는다고 해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매일 찾게 될지는 솔직히 의문이 든다. 나만 해도 이 어지럼증 때문에 당분간은 눈앞에 화면을 씌우는 기기는 쳐다보기도 싫어질 것 같았다.
다음 방문에는 야외 전시 위주로 둘러보고 싶은 이유
체험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그나마 속이 좀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조카들은 재미있었다며 재잘거렸지만, 나는 머리가 띵해서 한동안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다음에 혹시라도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이런 기계 체험은 그냥 건너뛰고 호국전시관 내부의 역사 유물들이나 낙동강 평화분수 같은 야외 시설들만 조용히 둘러보고 싶다. 몸을 움직이고 기계를 타는 것보다 그냥 눈으로 조용히 텍스트를 읽고 전시물을 감상하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나한테는 훨씬 덜 피곤하고 유익하다는 사실을 느낀 하루였다. 어지럼증은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쉽게 가라앉지 않아서 저녁 내내 누워만 있었다.

정말 공감했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 때문에 가상현실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낮아졌거든요. 특히 어지러움 때문에 불편하더라고요.
화면이 너무 쨍하지 않아서 오히려 현실감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야외 전시처럼 자연과 함께 경험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가상현실 기기 움직임이 너무 둔탁해서, 오락실 시뮬레이터처럼 깊이 몰입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