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친구랑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VR 전시를 보러 다녀왔다. 평소에 3D 모델링이나 영상 작업에는 관심이 좀 있었던 터라, 시네마4D로 구현된 공간이 실제 전시장에서 어떻게 보일지 내심 궁금했거든. 대략 2만 원 중반대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입구에서부터 꽤 묵직한 기기를 건네주더라. 이걸 머리에 쓰고 나면 바로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막상 써보니 무게 때문에 목부터 뻐근해지는 게 현실이었다.
너무 넓은 공간감과 좁은 현실의 간극
전시 공간 자체는 꽤 넓게 꾸며져 있었다. 근데 VR 기기를 쓰고 이동하려니 발을 내딛는 게 엄청 조심스러워지더라. 혹시라도 옆에 있는 기둥에 부딪히거나 바닥에 있는 선을 밟을까 봐 계속 긴장하게 된다. 영상미는 정말 화려했다. 전통 문양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그래픽들이 둥둥 떠다니는데, 그래픽 자체는 훌륭했지만 내 시야각이 기기 프레임에 갇혀 있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이게 기술적인 한계인지 내가 기기 착용을 제대로 못한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저 허공에 손을 휘젓는 나를 신기하게 보겠지만, 정작 나는 화면 속의 물체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기술이 보여주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
중간에 ‘AI 스튜디오’ 섹션에서 제공하는 체험이 있었는데, 실시간으로 내 움직임에 반응해서 화면 속 도면이 변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이게 딜레이가 미세하게 발생하는 순간이 자꾸 생기더라. 0.5초 정도의 그 묘한 지연 시간 때문인지, 나중에는 살짝 멀미가 났다. 3D 도면이 눈앞에서 회전하는데 내가 컨트롤하는 느낌이 아니라, 시스템이 나를 끌고 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탓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이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까. 그냥 모니터로 볼 때의 깔끔한 렌더링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결국은 끝까지 적응하지 못한 무게감
전시 관람 시간은 대략 한 시간 반 정도로 안내받았는데, 40분 정도 지나니까 이제는 영상이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빨리 기기를 벗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체험 공간이 너무 밝아서인지, 아니면 기기 내부로 들어오는 빛샘 현상 때문인지 자꾸 집중력이 깨졌다. 같이 간 친구는 재미있다고 했지만, 나는 내내 ‘이걸 그냥 고해상도 스크린으로 봤으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하는데, 정작 내 몸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밖으로 나왔을 때의 묘한 허무함
전시장을 나와서 다시 일반적인 조명 아래로 돌아오니까 모든 게 평범하게 느껴졌다. 밖에서 본 현수막에는 ‘XR 기술을 통한 몰입형 경험’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내가 경험한 건 몰입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격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그냥 조용한 박물관에 가서 눈으로 직접 유물을 보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디지털로 구현된 가상의 방을 체험하려고 땀 흘리며 기기를 썼던 게 맞는 건지, 전시장을 나오면서도 계속 의문이 남았다. 아마도 다시 VR 전시를 찾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더 가벼운 장비가 나왔을 때나 갈 것 같다. 당분간은 디지털 화면보다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이 더 그리울 듯하다.

VR 기기 쓰고 움직이려다 기둥에 부딪힐까 봐 계속 조심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시야각 때문에 답답한 느낌도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