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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전시 준비하다가 VR 장비랑 싸우고 온 날

어쩌다 시작된 VR 전시 준비

올해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남들은 다들 평범하게 액자에 사진 걸고 캔버스 세워둘 때, 괜히 폼 잡는다고 실감 콘텐츠니 뭐니 하는 쪽으로 손을 댔다가 고생만 바가지로 하고 있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는 ‘인터랙티브’라는 단어 하나에 꽂혀서 이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갈지 상상도 못 했다. 동기들은 다들 여유롭게 도록 만들고 큐레이션 고민할 때, 나는 이름도 생소한 미디어센터 장비실을 자기 집 드나들듯 드나들고 있으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다.

툭하면 끊기는 렌더링과의 전쟁

문제는 역시 컴퓨터였다. 학교 미디어센터에 있는 컴퓨터가 꽤 좋은 사양이라고는 하는데, 내가 만든 3D 모델링 파일은 왜 이렇게 무거운 건지. 프로젝트 하나 돌릴 때마다 팬 소리가 비행기 이륙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정작 렌더링은 반도 안 가서 멈추기 일쑤였다. 비용을 생각하면 외부 렌더팜을 쓸 여유도 없고, 결국 밤마다 학교에 남아서 쿨러 돌아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드는 생활이 반복됐다. 대략 50만 원 정도 들여서 사제 외장 하드를 하나 샀는데, 그거 없었으면 아마 프로젝트 날려 먹고 진작에 포기했을 거다. 3D 인테리어 소스 하나 불러올 때마다 10분씩 멈춰있는 화면을 보고 있으면 내가 작업을 하는 건지, 컴퓨터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간다.

기기 세팅이 현실이 되다

어제는 AR 글래스를 직접 빌려서 테스트를 해봤는데, 이게 생각보다 너무 예민하더라. 안경을 쓰고 조도 조절을 하려는데 자꾸 트래킹이 튀어서 애를 먹었다. 진주성 쪽에서 프로젝트 하던 다른 팀들 이야길 들어보니 밖에서 하는 증강현실은 더 지옥이라던데, 실내 환경이라고 마냥 쉬운 건 아니었다. 조명 위치를 10cm만 옮겨도 센서가 인식을 못 해서 처음부터 다시 매핑을 해야 했다. 이런 세세한 물리값 맞추는 게 이렇게나 짜증 나는 일인 줄 누가 알았겠나. 그냥 정적인 전시가 차라리 나았을까 싶다가도, 막상 센서가 딱 인식돼서 가상의 오브제가 눈앞에 떠오를 때의 그 묘한 쾌감 때문에 포기를 못 한다.

너무 많은 정보값과 피로감

돌비 애트모스니 360 오디오니 하는 음향 장비까지 손대기 시작한 건 실수였다. 영상만 잘 나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소리까지 공간감을 입혀야 ‘실감’이 난다고 다들 그러니까 욕심이 생겨서 장비를 이것저것 만져보게 됐다. 그런데 막상 다 설치하고 나니까, 과연 관람객들이 이 정도 디테일까지 체감할 수 있을까 싶다. 그냥 툭 치면 툭 하고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요소 하나 넣는 데만 꼬박 3시간이 걸렸는데, 관람객들은 아마 그냥 지나가면서 ‘오 신기하네’ 하고 1분 만에 자리를 뜰 게 뻔하다. 이 허탈함은 어디에다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끝나지 않는 전시 준비

결국 어제도 막차를 놓치고 택시를 탔다. 택시비로 2만 원이 넘게 나왔는데, 전시 예산에서 깎아야 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프다. 내일은 다시 학교에 가서 렌더링 결과를 확인해야 하는데, 제발 이번에는 오류 없이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VR이나 실감 콘텐츠가 미래라고들 하지만, 일단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이 과정은 그냥 노동 그 자체다. 졸업 전시가 끝나고 나면 다시는 이런 거 안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막상 결과물이 잘 나오면 또 미련이 남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아직도 무엇이 최선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제출해도 되는 건지, 아니면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하는 건지. 밤이 깊었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불안함이 계속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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