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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쓰고 보는 세상이 어색했던 오후

지난주였나, 동네 새로 생겼다는 복합문화공간에 갔다가 얼떨결에 VR 해양안전체험이라는 걸 해봤다. 사실 입구에서부터 팜플렛을 나눠주길래 아이들이나 하는 거겠거니 하고 지나치려 했는데, 안내하시는 분이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어른들도 다들 놀란다고 어찌나 강조를 하시던지. 엉겁결에 줄을 서서 15분 정도 대기했다. 5월이라 그런지 행사장에 사람이 꽤 많았는데, 땡볕 아래서 기다리다 보니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앞 사람이 쓰고 벗는 걸 보는데, 다들 허공에 대고 허우적대는 모습이 좀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묘하게 생소했다.

무거운 기기를 쓰고 마주한 바다

막상 내 차례가 되어 기기를 머리에 씌워주시는데, 생각보다 무게감이 상당했다. 묵직한 게 코끝을 짓누르는 느낌이라 벌써부터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화면이 켜지고 나니 갑자기 눈앞에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가 펼쳐졌다. 분명히 실내인데 발밑이 울렁거리는 착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벽을 찾았다. 이게 VR의 묘미라고는 하는데, 사실 처음에는 어지러움이 먼저 왔다. 바다 위에서 배가 기울어지는 상황을 구현했다는데, 시각 정보와 내 몸의 균형 감각이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봤던 사이버모델하우스가 단순히 3D 렌더링 된 사진을 클릭해서 보는 정도였다면, 이건 차원이 달랐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정말로 그 공간이 있는 것 같아서 뇌가 계속 착각을 일으키는 거다.

기술이 주는 피로감과 불확실함

체험 시간은 고작 5분 정도였던 것 같은데, 밖으로 나왔을 때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마 초점이 제대로 안 맞았거나 기기가 내 얼굴형에 잘 안 맞았던 것 같다. 롯데시네마에서 VR 콘서트를 단독 상영한다고 했을 때도 ‘굳이 영화관에서?’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이런 식으로 체험을 해보니 왜 사람들이 환호하는지는 알겠더라. 하지만 동시에 이게 내 일상이 될 수 있을까 하면 조금 회의적이다. 3D 디자인을 전공하는 지인이 예전에 시네마4D 작업을 보여주며 이거 하나 만드는 데 며칠이 걸린다고 하소연했던 게 기억난다. 이렇게 정교한 환경을 구현해놓고 정작 이용자는 10분도 안 되어 피로를 느낀다면, 이게 정말로 효율적인 매체인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투명 디스플레이와 실감형 콘텐츠의 경계

나오는 길에 보니 한쪽에 투명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전시가 있었다. VR 기기를 쓰지 않고도 공간 안에 영상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건데,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훨씬 덜 피곤했다. 요즘 어딜 가나 AR이니 VR이니 실감형 콘텐츠니 홍보가 한창이다. 어제는 지하철역에서 지자체 스마트 관광 앱을 홍보하는 배너도 봤다. 데이터 허브를 통해 방문 패턴을 분석한다고 써있었는데,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의 경험마저 데이터로 치환되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박람회나 행사장에서 흔히 보는 이런 기술들이 과연 우리 삶을 얼마나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지, 아니면 단순히 ‘새로운 기기’를 선보이는 데 그치는 건지 판단이 잘 안 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창밖을 보는데, 스마트폰 화면 속에 갇혀 있던 세상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VR 기기 속의 정교한 바다도 좋지만, 그냥 눈앞에 펼쳐진 뿌연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 하늘이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조만간 또 이런 행사가 있으면 한 번 더 가보긴 하겠지만, 굳이 찾아서까지 해야 할까 싶다. 처음에는 흥미로웠는데 지금은 그냥 얼른 집에 가서 누워있고 싶은 마음뿐이다. 다음엔 좀 더 가벼운 기기가 나오려나. 사실 그런 게 나와도 내가 다시 머리에 쓰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안경을 쓰고 보는 세상이 어색했던 오후”에 대한 3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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