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전시장에서 쓴 VR 헤드셋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지난 주말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는 ‘자밀 프라이즈’ 전시에 다녀왔다. 원래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그렇게 깊은 조예가 있는 건 아닌데, 그냥 주말에 딱히 할 일도 없고 무엇보다 입장료가 무료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사실 요즘은 웬만한 문화생활을 하려면 영화 한 편을 봐도 1만 5천 원은 그냥 깨지는 세상이니까,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싶었다. 전시장에 들어가니 영상이랑 사운드, 그리고 VR 체험까지 꽤 알차게 준비되어 있었다. 예전에 집에서 저가형 VR 기기를 써보고 멀미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조금 걱정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그런 건 괜한 기우였나 싶기도 하고.

VR 체험을 기다리는 애매한 줄

전시장 한구석에는 VR 기기를 쓰고 영상을 감상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문제는 대기 줄이었다. 특별히 번호표를 뽑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냥 서서 기다리는 구조였는데, 이게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안내해 주는 사람도 없고 그냥 막연히 앞사람이 벗기를 기다려야 했다. 한 15분 정도 서 있었나.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앞에 기기를 쓴 사람들이 왠지 모르게 불편해 보이는 몸짓을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떤 분은 기기를 고쳐 쓰느라 바쁘고, 어떤 분은 고개를 너무 과하게 돌리다가 휘청거리기도 했다. 막상 내 차례가 돼서 기기를 써보니 왜 그런지 바로 이해가 갔다. 헤드셋 자체가 생각보다 묵직해서 목 근처가 금방 뻐근해지는 거다. 화면 속 세상은 분명 화려하고 밀도 높게 구현되어 있었는데, 그 무게감 때문에 영상에 온전히 몰입하는 게 쉽지 않았다.

기술력은 좋은데 피로감은 어쩔 수 없나

이번 전시는 언리얼엔진 같은 기술을 활용해서 이슬람 문화예술을 입체적으로 풀어냈다고 들었다. 확실히 기술은 참 좋아졌다. 렌더링된 공간은 실제 거대한 인테리어 쇼룸을 걸어 다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교했다. 예전에 친구가 모델링 작업하면서 ‘이게 다 물리엔진 덕분이다’라고 말하던 게 생각났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흔들리는 디테일을 보면서, 이런 기술들이 단순히 게임이나 메타버스 공간에만 쓰이는 게 아니라 예술의 영역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딱 거기까지였다. 5분 정도 지나니까 기기 열기 때문에 눈가가 뜨끈해지기 시작했다. 안경을 쓴 상태로 기기를 썼더니 코받침 쪽이 자꾸 짓눌려서 안경을 벗을까 말까 고민하게 됐다. 결국 10분 정도 지나니까 전시의 내용보다는 ‘아, 언제쯤 끝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영화관 VR 콘서트와는 또 다른 기분

얼마 전에 롯데시네마에서 했던 르세라핌 VR 콘서트가 생각났다. 그때는 영화관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남들과 함께 VR을 경험하는 형태였는데, 이번 전시에서의 VR은 조금 더 고독하고 개인적인 느낌이었다. 전시장이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왠지 나만 덩그러니 가상현실 속에 남겨진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영화관에서 봤던 VR은 조금 더 엔터테인먼트 측면이 강해서 시간이 금방 갔던 것 같은데, 전시장에 설치된 VR은 영상의 호흡이 훨씬 길고 느릿했다. 이게 예술적인 연출이라는 건 알겠는데, 서 있는 채로 10분 넘게 무거운 기기를 뒤집어쓰고 있자니 관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훈련을 받는 기분까지 들었다.

키오스크보다 못한 접근성의 딜레마

나오는 길에 전시장 입구의 키오스크를 봤다. 층별 안내랑 행사 일정을 보여주는 화면은 참 매끄러운데, 왜 체험형 기기들은 이렇게 쓰기 번거로울까 싶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키오스크가 넘쳐나서 주문하는 것도 일상이 됐는데, VR은 왜 아직도 이렇게 ‘큰맘 먹고’ 해야 하는 영역인지 모르겠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거보다야 나았지만, 나오면서 목을 돌려보니 확실히 근육이 뭉친 게 느껴졌다. 다음에 또 이런 전시가 있다면 기꺼이 관람은 하겠지만, VR 체험은 좀 더 고민해 볼 것 같다. 굳이 이렇게까지 무거운 걸 쓰고 봐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막상 안 하면 뭔가 중요한 걸 놓치는 것 같아 계속 고민하게 된다. 이 애매한 만족감은 아마 기술이 더 발전해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