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샀을 때의 그 묘한 설렘은 어디 갔을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메타 퀘스트를 덜컥 구매했다. 그때는 정말 세상이 변할 줄 알았다. 퇴근하면 매일같이 가상현실 속에서 땀 흘리며 운동하고, 여행지도 가보고, 우주 공간도 떠다닐 줄 알았으니까. 가격도 대략 50만 원 중반대였으니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금액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돈으로 뭘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처음 며칠은 정말 신기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내 방 거실이 아니라는 게, 손을 휘두르면 가상의 물체가 반응한다는 게 너무 새로웠으니까.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게, 그 신기함이라는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훨씬 짧았다.
머리에 얹는 묵직한 무게감과 땀
문제는 기기가 생각보다 무겁다는 거다. 평일 저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오면 사실 침대에 눕는 게 제일인데, 굳이 그 무거운 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고정하고, 컨트롤러를 쥐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노동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안경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렌즈 사이로 들어오는 열기가 꽤나 거슬렸다. 한 30분 정도 하고 나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데, 이걸 닦으려고 헤드셋을 벗으면 그 순간 현실의 건조한 공기가 확 느껴지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나’ 싶은 허탈함이 찾아온다. 이게 참 묘한 기분이다. 가상현실 속에서는 분명히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거나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은데, 현실로 돌아오면 나는 그냥 좁은 거실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일 뿐이니까.
360도 영상이 주는 어색한 피로감
최근에는 경산자인단오제 같은 행사에 VR 콘텐츠가 도입된다는 뉴스를 봤다. 전통문화랑 첨단 기술을 섞는 게 요즘 트렌드라는데, 직접 가서 보는 건 어떨지 모르겠다. 집에서 360도 영상을 보고 있으면 가끔 멀미가 날 때가 있다. 분명히 시각적으로는 움직이고 있는데 내 몸은 소파에 붙어 있으니까 뇌가 혼란스러워하는 느낌이다. 가상현실 게임인 ‘세티스파이’처럼 몰입감이 엄청난 콘텐츠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거창한 세계관에 나를 던져두기엔 이미 내 현실 속 서사가 너무 피곤하다. 화면 속에서 캐릭터들이 뭐라고 떠들든, 나는 그저 내일 아침 알람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온다.
기술은 발전하는데 나는 왜 제자리일까
MBC 개표 방송에서 AI나 XR 기술을 써서 화려하게 꾸미는 걸 보면 확실히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냥 평면 TV로 보는 게 다였는데, 이제는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기술들이 쏟아지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첨단 기기들을 집에서 써보면 써볼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전쟁 영화를 VR로 보면 실감이 난다지만, 그 실감이 주는 무게를 감당하는 게 나한테는 너무 버거운 일인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아무런 기술적 필터 없이 그냥 내 눈으로 보는 세상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서랍 속 어딘가에 있는 기기
오늘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서랍을 열었다가 퀘스트가 눈에 띄었다. 배터리를 충전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그냥 덮어버렸다. 충전하는 시간도 기다려야 하고, 업데이트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작 즐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을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이걸 당근마켓에 내다 팔기에는, 언젠가 또 친구들이 놀러 오면 한 번쯤 보여주면서 ‘이런 게 있다’고 자랑할 법한 물건이라 애매하다. 기기는 점점 먼지가 쌓여가고, 나는 여전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게 기술의 발전이 내 삶에 끼친 영향의 전부인 것 같다. 거창한 변화는 없고, 그냥 약간의 호기심과 조금 더 쌓인 먼지 정도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