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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윈이라는 거창한 이름치고는 너무 조용했던 오후

처음 가본 기술 박람회 현장에서 느낀 묘한 거리감

며칠 전 코엑스에서 열린 행사에 다녀왔다. 뭐 사실 대단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요즘 VR이니 AR이니 하는 것들이 실생활에 얼마나 들어와 있나 궁금하기도 했고 회사 근처라 슬쩍 들러봤다. 입구부터 사람이 꽤 많았는데 들어가 보니 다들 큼직한 기기를 머리에 쓰고 허공에 손을 휘젓고 있더라. 나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는데, 대기 시간만 거의 40분이 넘었다. 솔직히 그 시간이면 근처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시는 게 훨씬 이득이었을 텐데, 왜 그렇게 끝까지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막상 써본 기기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눈앞에 펼쳐지는 가상 공간이라는 게 그냥 조금 선명한 게임 화면 수준 같아서 살짝 김이 샜다.

3D 인테리어 부스에서 마주친 기묘한 사실감

한쪽 구석에는 3D 인테리어 솔루션을 시연하는 곳이 있었다. 사실 이게 오늘 방문의 실질적인 목적이었다. 우리 집 거실을 좀 손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싶었는데, 상담원분이 보여준 건 거의 전문 건축가용 프로그램처럼 보였다. 비용을 슬쩍 물어보니 개인보다는 기업 대상의 솔루션이라 기본 도입 비용만 몇백만 원에서 시작한다고 하더라. ‘아, 그냥 내가 직접 줄자로 재는 게 낫겠구나’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건 그냥 대충 가구 배치 미리 해보는 정도의 간편한 앱이었는데, 여기서는 디지털 트윈이니 MES 시스템 연동이니 하는 어려운 말들만 쏟아냈다. 내가 그 기기를 쓰고 가상 공간 속의 벽지를 바꿔보는 체험을 했는데, 색감은 정말 기가 막히게 똑같더라. 근데 그게 실제 내 방의 조명 아래에서 어떻게 보일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노릇이지 않나. 체험은 좋은데, 정작 궁금한 점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부스를 빠져나왔다.

VR 정비존에서 보게 된 항공우주 관련 기술들

돌아다니다 보니 KAI 부스였나, 거기서 VR 정비존을 운영하고 있었다. 비행기 부품 같은 걸 가상 현실 속에서 정비해보는 건데, 이건 좀 신기하긴 했다. 현실에서는 비싼 장비를 직접 뜯어보기가 어려우니까 이렇게라도 연습하면 확실히 효율은 좋겠더라. 근데 옆에 있던 어떤 분이 ‘이거 하면 진짜 현장에서도 바로 적응되나요?’라고 물어봤는데, 담당자가 약간 말을 흐리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실제 손맛이랑은 차이가 있겠지. 내가 예전에 취미로 시계 수리를 좀 배워볼까 해서 찾아봤던 워치솔루션이라는 곳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그분들도 기계 장치는 결국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껴봐야 안다고 했거든. VR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직접적인 감각’의 영역은 참 넘기 힘든 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은 앞서가는데 내가 채워야 할 간극은 여전하고

전시장을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이런 기술들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오기엔 아직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그동안 너무 기대치를 높게 잡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 부스에서 보여준 초소형 OLED 기술이나 광학 솔루션들은 정말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려했지만, 사실 내 눈앞의 현실은 여전히 벽지에 곰팡이가 피어 있고 가구 배치는 고민 중인 상태 그대로니까. 나중에 집에 오는 길에 광주에서 VR 체험 카페를 한다는 친구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어봤다. ‘거기 가서 하면 재밌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스트레스 풀러 오기엔 좋지만 매일 하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 나 역시 딱 그 정도의 감흥을 느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든 묘한 피로감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데, 가방 속에 들어있던 팸플릿들이 짐처럼 느껴졌다. 예쁜 그림이 그려진 가상 현실 속의 집보다, 당장 내일 출근해서 마주할 사무실의 현실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건 왜일까. VR 기술이 고도화되면 미래에는 정말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없어진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우리는 지금 그 경계 사이에서 아주 미묘한 피로감을 느끼며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박람회에서 받은 기념품 볼펜 하나가 잉크가 잘 나오는지 확인해봤는데, 역시나 싼 게 비지떡인지 금방 끊겨 나오더라. 그런 사소한 일상의 불편함은 가상 현실로도 고칠 수 없는 건데 말이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으면 굳이 혼자 가서 줄을 서지는 않을 것 같다. 그냥 주말에 유튜브 영상으로 요약된 거나 보는 게 내 체력에는 딱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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