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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체험하러 갔다가 어지러움만 얻고 왔다

강당 뒤편에 설치된 정체불명의 기계들

지난주 학교 체육관에서 갑자기 진로 체험 프로그램이라는 걸 한다길래 반 아이들이랑 우르르 몰려갔다. 사실 수업 안 듣고 체육관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큰 기대는 안 했다. 들어가 보니 웬 큰 상자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겉보기엔 좀 낡아 보이는 VR 기기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담당하시는 분이 와서 설명을 하시는데, 무슨 반도체 공정을 가상으로 체험하고 미래 직업 역량을 키운다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는 ‘그냥 게임기 몇 개 갖다 놓은 거 아닌가’ 싶었다.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왔는데, 기기가 생각보다 무거워서 머리에 쓰자마자 목이 꺾이는 줄 알았다. 비용이 꽤 비싼 장비라던데 관리 상태가 아주 최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반도체 공장을 걷는 기묘한 기분

안경을 쓰고 기기를 씌워주는데 코가 너무 아팠다. 화면이 켜지니까 가상 공장이 나오긴 하는데 화질이 생각보다 너무 자글자글했다. 픽셀이 다 보이는 느낌이랄까. 버튼을 눌러서 로봇 팔을 움직여보라는데, 반응 속도가 미묘하게 느려서 자꾸 헛손질을 했다. 옆에 있던 친구는 신나서 소리를 지르는데 나는 5분도 안 돼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고등학생들이 반도체 학과 진학을 위해 미리 맛보는 과정이라던데, 이걸로 뭘 배울 수 있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게임 오락실에서 하는 레이싱 게임보다 훨씬 더 어지러운 느낌? 그래도 옆에서 운영 요원분이 계속 뭘 클릭하라고 시키니까 억지로 끝까지 하긴 했다. 시간은 15분 정도 소요된 것 같은데 체감은 한 시간은 넘게 한 기분이다.

땀 범벅이 된 채로 끝난 진로 탐색

체험 끝나고 기기를 벗으니까 체육관 공기가 너무 상쾌하게 느껴졌다. 이마에 고무 자국이 빨갛게 남아서 거울 보고 좀 웃었다. 같이 체험한 친구들이랑 밖으로 나오면서 ‘이거 진짜 반도체 공장이랑 똑같아?’라고 물어봤는데 다들 대답이 없다. 그냥 뭐 했는지도 잘 기억 안 나고, 눈만 좀 침침해진 기분이었다. 학교에서 이런 체험 학습을 종종 가져오긴 하는데, 이게 정말 우리 진로에 도움이 되는 건지는 사실 의문이다. 예전에는 태권도나 경호 관련 프로그램 같은 것도 오고 그랬는데, 그런 것들은 몸이라도 쓰지 이건 그냥 가만히 서서 어지러움을 참는 시간 같았다.

예산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행사의 이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런 게 다 무슨 진로 박람회 예산으로 운영되는 거라고 하던데, 아마 꽤 큰 금액이 들었을 거다. 구체적인 비용은 모르겠지만 요즘 이런 VR 관련 체험이 학교마다 꽤 많이 들어간다고 들었다. 그런데 막상 학생 입장에서는 이게 최신 기술을 접하는 즐거움보다는, 그냥 잠깐 학교 분위기 환기하는 이벤트 정도로 느껴진다. 물론 프로그래밍이나 기초 과학에 관심 있는 애들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반 대부분은 그냥 체험 도장 찍으려고 온 눈치였다. 행사가 끝나고 나니 남은 건 팸플릿 한 장이랑 약간의 피로감뿐이다. 다음번엔 좀 더 활동적인 게 왔으면 좋겠는데, 또 과학 체험 같은 거 온다고 해서 벌써 걱정이다.

여전히 막막하기만 한 진로 계획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친구랑 다시 얘기를 나눴다. ‘너는 나중에 이런 쪽으로 갈 거야?’ 물어보니 친구가 그냥 웃기만 한다. 우리 고등학생들 진로라는 게 사실 이런 짧은 체험 한 번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방과 후에 따로 심화 학습을 듣기에는 학원 스케줄이 너무 꽉 차 있다. 진로 직업 체험 센터 같은 곳에서 전문적으로 상담을 받아보라는 이야기도 듣긴 했는데, 당장 눈앞에 닥친 수행평가 챙기느라 그런 건 생각할 여유가 없다. 가상현실 속에서 공장을 견학하는 것보다 차라리 학교 밖으로 나가서 실제 현장을 10분이라도 보고 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체험은 체험일 뿐, 내 일상은 여전히 문제집 사이를 헤매고 있다.

“가상현실 체험하러 갔다가 어지러움만 얻고 왔다”에 대한 4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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