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VR 기기, 특히 메타 퀘스트 2나 PICO 4 같은 걸 산다는 친구들을 보면 솔직히 좀 의아했었다. ‘저걸로 뭘 하려고?’ 하는 생각. 사실 나도 몇 년 전에 퀘스트 2를 덜컥 구매했다가 몇 번 써보고는 먼지만 쌓이는 경험을 했기에, 이번에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까 싶어 망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동생이 PICO 4를 덜컥 질렀고, 그걸 만져볼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기대 반, 의심 반
동생이 PICO 4를 처음 들고 왔을 때, 솔직히 ‘또 짐만 늘었네’ 싶었다. 전에 샀던 퀘스트 2도 처음엔 ‘신세계다!’ 외치며 게임도 몇 개 사서 깔았지만, 결국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일단 제일 큰 문제는 ‘멀미’. VR 게임 특성상 화면이 흔들리거나 시점이 급격하게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10분만 지나도 토할 것 같은 느낌을 주더라. 특히 FPS 게임 같은 건 엄두도 못 냈다. 또 하나는 ‘가격’. VR 게임 타이틀 하나가 PC 게임이나 콘솔 게임 못지않게 비쌌다. 퀘스트 2 살 때 ‘이 게임들 다 할 수 있겠지’ 하고 몇 개 샀는데, 막상 해보니 멀미 때문에 제대로 못 하고 환불도 못 받고… 결국 몇십만 원을 날린 셈이었다.
PICO 4를 처음 만졌을 때도 이런 불안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동생은 “이건 퀘스트 2보다 훨씬 가볍고 화면도 선명하다”며 자신만만해했지만, 솔직히 ‘또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보자’ 정도의 마음이었다. 실제로 착용해보니 확실히 퀘스트 2보다는 무게감이 덜했고, 렌즈도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었다. ‘오, 이건 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때문에 VR 기기를 다시 보게 되다
처음 PICO 4로 해본 건 역시 게임이었다. ‘Beat Saber’ 같은 리듬 게임은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멀미는 여전했다. 그런데 동생이 ‘이거 해봐’라며 보여준 것이 바로 360도 영상이었다. 특히 ‘VR 여행’ 같은 콘텐츠들이 많았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거나, 히말라야 설산을 걷는 듯한 영상을 보는데, 이건 정말 신기했다. 내가 직접 그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전에는 ‘VR 게임=멀미’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 있었는데, 360도 영상은 그런 멀미가 거의 없었고 몰입감이 엄청났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간 것처럼, 물리적인 제약 없이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것도 완벽하진 않다. 고화질 360도 영상은 용량이 어마어마해서 스트리밍으로 보려면 인터넷 속도가 꽤 중요했다. 끊기거나 화질이 깨지면 몰입감이 확 떨어졌다. 그리고 ‘진짜’ 여행과는 당연히 다르다. 냄새도 안 나고, 바람도 안 느껴지고, 사람들과 부딪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갈 수 없는 곳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매력적이었다. 특히 나처럼 물리적인 제약 때문에 여행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었다. 퀘스트 2를 샀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망설여지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퀘스트 2나 PICO 4 같은 VR 기기를 ‘무조건 사라!’고 추천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여전히 ‘킬러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360도 영상은 신기했지만, 이걸 얼마나 자주 찾아보게 될까? VR 게임도 ‘Beat Saber’ 외에 멀미 없이 오래 할 만한 게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Superhot VR’처럼 독특한 게임들도 있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결국 2~3시간 쓰고는 다시 책상 서랍 속으로 들어갈 확률이 높다.
또한, VR 체험관이나 VR 방탈출 같은 곳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요즘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VR 체험관’ 같은 곳이 꽤 많다. 2~3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1시간 정도 다양한 VR 콘텐츠를 체험해볼 수 있다. 집에서 100만 원 가까이 하는 기기를 사서 몇 번 쓰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일 수 있다. 특히 ‘화재 교육’이나 ‘안전 교육’ 같은, 특수한 목적을 가진 VR 콘텐츠는 체험관에서 경험해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직접 고층 건물 철골 위에서 작업하는 시뮬레이션을 VR로 체험해보면, 몸으로 체득하는 안전 교육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 회사에서 안전 교육 받을 때, 영상으로만 보던 것보다 VR로 직접 체험했던 것이 훨씬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누가 사야 할까?
솔직히 말해, VR 기기는 ‘취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꼭 있어야 해!’라기보다는 ‘있으면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겠다’ 정도의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처럼 ‘일단 한번 써보자’ 하는 호기심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가격대가 퀘스트 2는 30~50만 원대, PICO 4는 40~60만 원대로 형성되어 있으니, 부담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만약 당신이…
- VR 게임에 대한 멀미가 거의 없고, 다양한 VR 게임 타이틀을 구매할 의향이 있는 사람
- VR 콘텐츠, 특히 360도 영상이나 가상 여행 콘텐츠를 꾸준히 찾아볼 정도로 흥미가 있는 사람
- 남들이 만들어 놓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언리얼 엔진 같은 툴로 VR 콘텐츠 제작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 (이 경우는 기기 자체보다는 제작 환경 구축에 더 초점을 맞춰야겠지만)
이라면 한번 구매를 고려해볼 만하다. 하지만
- VR 게임 멀미가 심하거나, VR 경험이 처음이라 걱정되는 사람
- VR 콘텐츠를 얼마나 자주, 오래 활용할지 확신이 없는 사람
- 단순 호기심으로 구매했다가 금방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
이라면, 차라리 VR 체험관을 몇 번 이용해보거나, 당근마켓 같은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저렴하게 나온 퀘스트 2를 먼저 경험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솔직히, 지금 당장 ‘이걸로 뭘 해야겠다!’ 하는 명확한 목표가 없다면, ‘다음에, 언젠가’를 기약하며 지갑을 닫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결국 VR 기기라는 건, 당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새로운 경험’을 살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문제인 것 같다.

VR 체험관에서 화재 교육 체험해본 적 있는데, 영상보다 훨씬 몰입감이 좋아서 잊혀지지네요.
VR 체험관에서 화재 교육 체험해본 적 있는데, 영상보다 훨씬 몰입감 있었던 것 같아요. 몸으로 느껴지는 현장감이 확실히 다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