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인가, 갑자기 친구들이랑 술 마시다가 VR 이야기를 꺼냈다. 그냥 한 번쯤 제대로 된 거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부산 쪽에서 VR 기기 렌탈하는 곳을 찾아봤다. 오큘러스 같은 건 많이 봤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HTC VIVE를 빌려보고 싶더라. 왠지 좀 더 본격적인 느낌이랄까. 가격을 알아보니 주말 이틀 빌리는 데 대략 15만 원 정도가 들었다. 처음에는 이게 비싼 건지 싼 건지도 모르고 그냥 일단 질렀다. 막상 택배로 박스가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구성품이 복잡해서 1차 당황했다. 기기만 오는 게 아니라 베이스 스테이션이니 뭐니 연결해야 할 게 너무 많더라.
좁은 거실에서의 셋팅은 곤욕이었다
문제는 우리 집 거실이 그렇게 넓지 않다는 거였다. VIVE를 제대로 즐기려면 트래킹 영역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베이스 스테이션 두 개를 대각선으로 설치하려니 삼각대 자리가 안 나왔다. 책장 위에 올렸다가 떨어질 뻔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셋팅하는 데만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케이블이 바닥에 굴러다니니까 발에 걸리고, 나중에는 그냥 엉망진창이 됐다. 이게 무슨 공간 기반 XR 체험 행사 같은 데서 보던 깔끔한 환경이랑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렌탈 업체에서 보내준 가이드를 보면서 낑낑거렸는데, 중간에 프로그램 업데이트 안 돼서 멈췄을 땐 그냥 다 포기하고 싶더라.
화면 속 세상과 현실의 괴리감
겨우 연결해서 처음 게임을 켰을 때의 그 묵직한 HMD 무게는 잊을 수가 없다. 확실히 싼 장비들이랑은 다르게 몰입감은 좋았다. 인터렉티브 게임 몇 개를 돌려봤는데, 고개를 돌릴 때마다 따라오는 반응 속도가 꽤 정확하긴 했다. 근데 30분 정도 하고 나니까 목이 아파왔다. 이게 내가 체력이 떨어진 건지, 아니면 기기가 원래 좀 무거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이 빌렸던 바이브 트래커도 제대로 인식이 안 돼서 중간에 설정창만 5번은 들어갔다. 그럴 때마다 그냥 유튜브에서 남들이 하는 거 구경하는 게 훨씬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더 귀찮았던 반납 과정
이틀 대여 기간은 정말 짧았다. 일요일 저녁이 되니 벌써 반납 준비를 해야 했다. 뜯을 땐 몰랐는데 다시 박스에 넣으려니 케이블 정리가 도저히 안 됐다. 처음에 어떻게 들어있었는지 사진을 찍어둘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구성품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곤란하니까 꼼꼼히 확인했는데, 컨트롤러 충전 케이블 하나가 어디 갔는지 한참을 찾았다. 소파 밑에 처박혀 있는 걸 겨우 발견했을 때는 진짜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굳이 또 빌릴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월요일 아침 일찍 택배를 보냈다. 15만 원이라는 돈과 셋팅하느라 썼던 시간, 그리고 해체하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면 ‘한 번 경험해본 걸로 됐다’는 마음이 든다. 요즘은 워낙 좋은 게 많아서 사서 쓰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나처럼 방이 좁고 귀차니즘이 있는 사람한테는 가끔 이렇게 빌려 쓰는 것도 일이다. 오히려 근처에 있는 VR 카페나 이런 곳을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거기는 알아서 다 해주고 공간도 넓으니까. 아직도 가끔 그때 느꼈던 VR 안의 그래픽이 생각나긴 하지만, 다시 그 복잡한 선들을 연결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기기 가격 자체가 부담되니 사는 건 더더욱 엄두가 안 나고, 그냥 이대로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나은 것 같다.

케이블 정리 진짜 꼼꼼하게 해야겠네요. 저도 VR 기기 빌릴 때, 사진 찍어두고 잃어버리는 일 방지하는 팁 꼭 기억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