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으로 박스를 열었는데
며칠 전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2010년대 중반쯤이었나, VR 열풍이 불었을 때 친구 집에서 처음 써봤던 그 투박한 오큘러스 리프트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난 거다. 그때는 눈앞에 세상이 펼쳐지는 게 마냥 신기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요즘 나오는 퀘스트 시리즈니 뭐니 하는 것들은 너무 비싸고 복잡해 보였다. 그래서 무작정 중고 장터를 뒤지기 시작했다. 상태가 좋은 오큘러스 리프트 CV1 모델이 하나 올라와 있길래 가격을 보니 10만 원대 후반이었다. 이 정도면 수업료라고 치고 사도 괜찮겠다 싶어 고민도 없이 바로 직거래 약속을 잡았다. 판매자분도 무척 친절했고, 박스까지 온전한 상태라 기분 좋게 들고 왔다.
설치부터 꼬이기 시작한 하루
집에 와서 방구석에 굴러다니던 PC를 꺼내 연결을 시도했다. 이게 예전 기기라 그런지 선이 정말 많다. HDMI 단자랑 USB 단자를 본체에 꽂아야 하는데, 그래픽카드 뒤편이 이미 모니터 선들로 꽉 차 있어서 꽤 애를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연결은 했는데, 막상 소프트웨어를 깔고 보니 드라이버 업데이트부터 센서 인식까지 해결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센서 두 개를 책상 양옆에 배치하느라 기존에 있던 스피커 위치까지 다 옮겨야 했다. 한 시간 넘게 땀을 흘리며 위치를 조정했는데도 소프트웨어상에서는 자꾸 센서 연결이 불안정하다고 떴다. 이게 케이블 문제인지, 아니면 내 본체의 USB 포트 출력이 약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결국 센서 하나는 포기하고 한 개만 설치해서 일단 맛보기로 써보기로 했다.
엑스박스 컨트롤러의 배신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같이 들어있던 엑스박스 컨트롤러가 말썽이었다. 판매자분은 분명 새 제품이라고 했고 실제로 비닐도 뜯지 않은 상태였는데, 도저히 PC랑 페어링이 안 되는 거다. 전용 어댑터인 동글이를 꽂아도 반응이 없고, 윈도우 설정 창에서는 알 수 없는 장치로만 떴다. 이게 기기 자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내 윈도우 버전이랑 호환이 안 되는 건지 검색을 해봐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30분 동안 배터리를 뺐다 꼈다를 반복하며 씨름하다 보니 짜증이 확 올라왔다. 결국 컨트롤러는 그냥 포기하고 가지고 있던 키보드와 마우스로 대충 게임을 실행했다. 4D 체험까지는 아니더라도 실감 나는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설정하느라 기운을 다 빼서 그런지 막상 VR 화면을 보니 멀미부터 올라왔다.
좁은 방 안의 가상 현실
공간 문제가 진짜 현실적인 제약이다. 오큘러스 리프트 케이블은 생각보다 짧다. 방 한가운데 서서 뭘 하려고 하면 자꾸 선이 발에 걸리고, 의자에 쓸리는 소리가 들린다. 몰입을 해야 하는데 자꾸 선을 의식하게 된다. 예전에 경험했던 그 신비로운 느낌은 사라지고, 그냥 선에 묶인 채 좁은 방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만 자꾸 신경 쓰였다. 도쿄 게임쇼 디지털 월드 같은 행사들을 보면서 나도 VR로 들어가서 구경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장착하고 나니 눈 주변의 압박감도 심하고 땀도 금방 찼다. 20분 정도 하다가 결국 헤드셋을 벗어 던져놓고 찬물부터 마셨다.
아직 남은 미련과 고민
그래도 가끔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써보기는 한다. 완전한 실패라고 하기는 뭐 하지만, 그렇다고 주변에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 나오는 퀘스트 시리즈는 무선이라는데, 이 지저분한 선들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기술이 많이 발전하긴 했구나 싶다. 가끔 이 기기를 그냥 다시 중고 장터에 올려야 하나 고민하다가도, 또 막상 켜놓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특유의 저해상도 감성이 나쁘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엑스박스 컨트롤러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냥 장식품처럼 책상 위에 굴러다니고 있는데, 언젠가 갑자기 인식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 사실 안 될 확률이 더 높다는 걸 알지만, 당장 해결할 의욕도 없어서 그냥 그대로 둔 상태다. 이게 정말 나한테 필요한 물건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옛 기억에 취해 충동구매를 한 것인지 아직도 확실하게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책상 옆에 스피커를 옮겨야 했다니, 공간 활용이 정말 중요하네요. 저도 PC 연결할 때 케이블 때문에 스트레스 엄청 받았던 기억이…
CV1은 정말 답이 없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호환성 문제 때문에 포기하고 다른 VR 기기들만 쓰거든요.